2025. 3. 24. 15:40ㆍ나의 책장
📚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 정의할 수 없어도 존재하는 삶에 대하여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를 읽으며 처음 든 생각은 "정말 물고기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이 사실일까?"라는 단순한 호기심이었다. 하지만 책장을 넘길수록, 이 책은 단지 생물학적 분류에 대한 의문을 넘어, 존재와 불안, 그리고 인간의 정체성에 대한 깊은 사유를 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룰루 밀러는 과학자의 이야기를 따라가며 물고기라는 개념이 얼마나 애매하고, 때로는 무의미한 분류에 지나지 않는지를 논리적으로 펼쳐 나간다. 이 과정은 단지 생물의 세계에 국한되지 않고, 우리 인간이 스스로를 정의하고자 하는 방식과 닮아있다. 우리는 나 자신을, 타인을, 세상을 이해하기 위해 끊임없이 이름 붙이고 구획 짓는다. 그러나 과연 그 이름과 경계가 진짜 실체일까? 책은 바로 그 질문을 우리 앞에 조용히 던진다.
작가의 개인적인 이야기, 특히 그녀가 겪은 상실과 불안, 그리고 존재의 혼란은 이 책의 또 다른 중요한 축이다. 물고기에 대한 집요한 과학적 탐구는 결국 자기 내면의 공허함을 메우려는 치열한 시도처럼 보이기도 했다. 특히, 세상이 무너졌다고 느껴지는 순간에도 여전히 무언가를 믿고 붙잡으려는 그녀의 고군분투는 과학서적을 넘어 하나의 인생 에세이처럼 다가왔다.
읽는 내내 '존재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우리는 무엇을 기준으로 존재를 인정하고 배제하는지를 반복해서 생각하게 되었다. 생물학적으로 '물고기'가 정의되지 않는다는 사실은 충격적이지만, 그보다 더 큰 충격은 인간의 세계에서도 이러한 허상 위에 많은 기준과 가치가 세워져 있다는 점이다. 이 책은 바로 그 허상에 파묻혀 살아가는 우리에게 말한다. "당신이 믿는 것이 정말 진실인가요?"
또한, 이 책은 과학과 철학, 그리고 문학적인 문체가 조화를 이루는 드문 사례라고 생각한다. 때로는 시처럼 아름답고, 때로는 에세이처럼 사적이며, 동시에 과학적 사실을 바탕으로 한 이론적 분석도 놓치지 않는다. 그 균형감이 놀라웠고, 그래서 더 깊이 빠져들 수 있었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단지 '물고기'에 관한 책이 아니다. 그것은 존재에 관한 책이며, 정의할 수 없는 것들과 살아가는 인간에 대한 기록이다. 삶의 불확실성에 흔들릴 때마다 이 책을 다시 꺼내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분류되지 않아도, 틀에서 벗어나 있어도, 우리는 여전히 존재할 수 있다는 것. 그것이 이 책이 나에게 준 가장 큰 위로였다.
이미지 출처 : 자체 제작 및 yes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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